대학로 문화공간 이다에서 뮤지컬 트라이앵글을 봤다. 역시 소극장에서 하는 건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보고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스펙터클함은 떨어지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집중이 더 잘 되고 감정이입도 훨씬 자연스럽다. 뭔가 알찬 공연관람이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소극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보니 자주 전개되는 두 세명의 배우가 대화를 주고 받는 형태의 줄거리도 나는 좋아한다.
근데 소극장 공연을 찬양하고자 뮤지컬 이야기를 시작한 건 아니고, 공연을 보면서 생긴 로망에 대해서 말해보련다. 뮤지컬은 친구 셋(남자 둘, 여자 하나)이 같이 살면서 생기는 일들을 소재로 했다. 그렇게 친한 친구들끼리, 그리고 포인트는 남녀가 같이, 산다는게 정말 좋아보였다. 남자친구들끼리 사는 것도 편하고 재밌기는 한데, 여자인 친구가 끼면 양상이 확 달라질 것 같다. 남녀간의 므흣한 썸씽의 가능성을 제기하는게 결코 아니다. 훨씬 더 플라토닉한 남녀간의 우정을 이야기하려는 거다. 신춘문예에 번번이 떨어지는 작가지망생을 여자 주인공이 위로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낯익은 훈훈함이 느껴졌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Virginia Woolf 소설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He was a failure, he said. ... It was sympathy he wanted, to be assured of his genius, first of all, and then to be taken within the circle of life, warmed and soothed, to have his senses restored to him, his barrenness made fertile"
- Virginia Woolf, To The Lighthouse (1927)
이거다. 남자밖에 없는 공간은 황폐하다. 황폐하다는 비유적인 표현 말고는 달리 정리가 안 되는 것이 참 아쉽지만, 남자는 그렇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존재이다. 정서적 안정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왜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남자와 여자의 전통적인 성역할 같은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하기보다는, 더 근원적으로 인간의 두뇌회로를 들여다보면서 설명해야 할 진화적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고 대답하겠다. 왜 그렇지 않은가, 아빠의 위로보다는 엄마의 위로가 더 와닿는 그런. 여자인 친한 친구와 함께 산다는 데에는 그런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뭔가 집이 집이 되는 듯한. 아 뭔가 미묘한 오해의 소지를 위험스레 넘나드는게 느껴지는데, 그 뮤지컬을 보면서 느껴졌던 복잡한 설레임을 최선을 다해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 정도이다.
그래서 결론은, 시카고 가서 여자가 포함된 룸메 조합을 구성해보겠다고. 여러분의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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